예술경영

협상력은 목소리가 아니라 구조다 — 삼성 노조 사태가 문화예술 경영자에게 묻는 것

삼성 반도체 노조의 협상력은 조직력이 아니라 대체불가성 구조에서 온다. 문화예술 경영자는 '어떻게 뭉칠까'가 아니라 '어떻게 대체불가능한 구조를 설계할까'를 물어야 한다.

삼성전자 노조 파업이 뜨거운 지금, 그 싸움의 옳고 그름보다 다른 것에 시선이 갑니다. 이 분쟁이 왜 이렇게 큰 무게를 갖는가. 왜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일 때 세상이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는 뭉쳐도 협상 테이블조차 만들지 못하는가.

문화예술 경영을 하다 보면 이 질문이 자꾸 돌아옵니다.

삼성 노조 사태가 '크게' 느껴지는 이유

노사분규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조의 파업은 단순한 임금 협상이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 뉴스가 됩니다. 애플의 다음 분기 생산 일정이 언급되고, 엔비디아 HBM 수급이 거론됩니다.

이건 근로자의 목소리가 특별히 정의로워서가 아닙니다. 그 공정이 멈추면 다른 공정이 멈추고, 그 공정이 멈추면 또 다른 공정이 멈추기 때문입니다. 협상력은 감정이 아니라 공학입니다. 정확히는 공급망 위상의 문제입니다.

이 시각에서 보면 삼성 노조의 협상력은 당장의 대체불가능성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문화예술 노조는 왜 같은 싸움이 안 되는가

2023년, 미국 작가조합(WGA)과 배우조합(SAG-AFTRA)이 동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148일. 할리우드 전체가 셧다운됐습니다.

그런데 그 148일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면, 그림이 다르게 읽힙니다. 한국·영국·캐나다의 드라마 제작 수주가 급증했습니다.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해외 콘텐츠 라이선스 계약을 앞당겼습니다. 그리고 넷플릭스, 디즈니, 애플은 이 기간에 AI 제작 기술 투자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파업이 오히려 대체 기술의 도입을 가속시킨 것입니다.

이건 파업의 실패라기 보단 구조의 차이입니다. 콘텐츠는 반도체가 아닙니다. 할리우드 작가가 멈추면, 세계는 다른 스크린을 켭니다. HBM 공정이 멈추면, 세계는 기다립니다.

한국 사례는 더 직접적입니다. 2006년 스크린쿼터 축소에 맞서 감독·배우들이 삭발 시위를 벌였습니다. 쿼터는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그 이후 한국 영화는 아카데미까지 갔습니다. 보호막이 사라지자 경쟁력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화예술 경영자의 진짜 질문은

여기서 결론은 "그러니까 우리도 더 강하게 뭉쳐야 한다"일까요? 음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협상력의 한계는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산업에서 대체불가성은 어떻게 설계하는가." 집단 행동에 기대지 않고, 구조 자체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의 질문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 가지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카테고리를 먼저 정의하라

독보적인 작품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그건 재능 경쟁이고, 재능은 언제나 누군가가 더 가질 수 있습니다.

더 강력한 전략은 평가 기준 자체를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신흥 카테고리에서 먼저 기준을 세운 조직은 '최고'가 아니라 '기준점'이 됩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경쟁자들은 나를 대체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를 기준으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아직 표준화되지 않은 영역에서 정의권을 쥐고 있는 쪽이, 재능 있는 후발주자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습니다.

두 번째. 재능이 아닌 연결의 위상을 점유하라

어떤 네트워크에서든 가장 대체하기 어려운 노드는 실력이 뛰어난 허브가 아닙니다. 원래 연결되지 않던 두 집단을 잇는 브리지입니다.

예를들어 ESG 예산을 가진 기업과 현장 예술가 커뮤니티와 공공기관의 정책 라인 — 이 세 집단은 서로 언어가 다릅니다. 이 셋을 동시에 연결하는 조직은, 셋 중 어느 하나보다 뛰어난 경쟁자가 나타나도 쉽게 대체되지 않습니다. 세 관계를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철수 비용을 복리로 쌓아라

어떤 사업이든 오래 운영할수록 쌓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관객 행동 데이터, 공간 파트너십의 역사, 예술가 네트워크, 협력사 신뢰, 지역사회 맥락. 이것들은 개별적으로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쌓이면 이전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갑니다.

누군가 나를 대체하려면 더 뛰어난 기획력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합니다. 그 시간이 3년이면, 나는 이미 6년 치를 갖고 있습니다. 이 격차는 복리로 벌어집니다.

마무리

삼성 노조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사태를 보면서 확인한 것은 하나입니다. 협상력은 목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 것. 문화예술 산업에서 그 구조를 설계하는 방법은, 제조업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산업의 언어로 대체불가성을 직접 건축하는 것입니다.

뭉치는 것보다 먼저, 뭉쳤을 때 무게가 실릴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