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도 '프리미엄 리그'가 필요하다
코스닥 승강제 도입 논의를 출발점 삼아, 문화예술이 외면해온 평가 시스템의 부재를 짚는다. 모든 단체를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보조금 구조는 한계에 도달했다.
시장은 더 이상 모든 기업을 같은 기준으로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화예술은 어떤가.
들어가며
자본시장이 큰 수술을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코스닥에 승강제를 도입한다. 이르면 올해 10월부터다.
코스닥 시장을 프리미엄·스탠더드·관리군 세 개 리그로 나누고, 실적과 지배구조에 따라 승격과 강등이 일어난다. 누구는 옥석 가리기를 환영하고, 누구는 낙인 효과를 걱정한다.
이 논의는 자본시장만의 일이 아니다. 문화예술 현장이 오래 미뤄둔 질문과 정확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
코스닥 승강제의 골자는 단순하다. 시가총액, 영업이익, 지배구조를 기준으로 약 100개 내외의 우량 기업을 '프리미엄'에 두고, 나머지를 스탠더드와 관리군으로 분류한다.
핵심은 분류 자체가 아니다. 분류 이후 승격과 강등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실적이 좋아지면 올라가고, 나빠지면 내려간다. 시장 안에 성장 사다리가 들어선다.
자본시장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모든 기업을 같은 방식으로 평가하지 않겠다. 우량한 곳은 더 잘 보이게 하고, 위험한 곳은 별도로 관리하겠다.
이 뉴스가 드러내는 구조
문화예술 현장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안고 있다.
2024년 공연예술시장 매출은 약 1조 5,259억 원이다. 전년보다 7.3% 늘었다.
같은 해 공연장 가동률은 51.5%, 전년보다 3%포인트 떨어졌다.
매출은 늘었는데 가동률은 줄었다. 의미는 단순하다. 소수의 흥행작이 시장을 끌어올리고 다수의 공연은 빈 객석을 본다는 뜻이다.
장르 쏠림은 더 극단적이다. 2024년 티켓판매액의 69.7%가 뮤지컬 한 장르에 집중됐다. 연극 11.1%, 무용 3.1%, 한국음악 0.7%다.
사실상 코스닥보다 먼저 '프리미엄 리그'가 형성되어 있는 셈이다. 차이는 하나다. 자본시장은 이 구조를 인정하고 제도화하려 한다. 문화예술은 인정하지 않고 모든 단체를 같은 보조금 양식으로 평가한다.
문화예술이 가진 진짜 문제는 양극화가 아니다. 양극화 위에서 모든 단체에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평가 시스템이다.
좋은 공연을 했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것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일은 어렵다. 작품성, 반응, 의미, 만족도 같은 단어는 무한히 쓸 수 있지만, 그 단어들 사이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체계는 없다.
기업은 매출, 영업이익, 성장률로 자신의 위치를 설명한다. 예술단체는 결과보고서, 사진, 후기, 정산서에 의존한다. 그 결과 우수한 단체와 그렇지 못한 단체가 같은 양의 보조금을 매년 갱신받는다.
코스닥이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하나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문화예술은 이 질문을 회피해왔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법은 코스닥의 형식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다. 문화예술은 시장성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시장성과 예술성, 공공성, 지속가능성이 함께 작동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단일 점수가 아니라 다층 지표 체계가 필요하다.
- 시장성 : 유료관객 비율, 재관람률, 자체수입 비중
- 예술성 : 창작 완성도, 비평, 차별성
- 공공성 : 접근성, 지역 기여도, 문화복지 효과
- 지속가능성 : 조직 안정성, 회계 투명성, 파트너십
- 데이터 신뢰도 : 관객 DB, 정산자료, 성과 측정 체계의 정확성
이 다섯 축으로 진단하면, 같은 보조금을 받는 단체 사이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어떤 단체는 시장성은 약하지만 공공성과 예술성이 강하다. 어떤 단체는 시장성은 강하지만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
진단의 목적은 줄 세우기가 아니다. 줄 세우기는 낙인을 만든다. 진단의 목적은 승격 경로를 설계하는 일이다.
지역 축제는 전국 브랜드로 갈 수 있는가. 일회성 공연은 반복 판매 가능한 IP가 될 수 있는가. 공공지원에 100% 의존하는 단체는 어느 단계에서 자체 수익을 만들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정책이 작동한다.
문화재단과 지자체에 주는 함의는 분명하다. 평가표를 단순화할 게 아니라 단계화해야 한다. 같은 양식으로 신생 단체와 10년 차 단체를 같이 평가하는 구조는 정책이 아니라 행정 편의다.
예술단체에 주는 함의도 분명하다. 사업계획서 잘 쓰는 역량 다음에 와야 할 것은 자기 단체의 데이터를 축적하는 역량이다. 관객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다시 오는지 모르는 채 다음 작품을 또 만든다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라 반복이다.
마치며
코스닥 승강제는 자본시장의 자기개혁이다. 그러나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문화예술 영역에도 그대로 유효하다.
우리는 우리 단체와 프로젝트의 현재 위치를 숫자로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문화예술 정책은 앞으로도 감각의 영역에 머문다. 답할 수 있어야 비로소 예산도, 평가도, 성장도 설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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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예슬 / 문화예술경영 전문컨설턴트, 아트라이앵글 대표